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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_302호 미정

미정과 정씨의 집미정의 남편 정씨는 키가 멀대 같이 크고 덩치가 좋았다.할머니들의 표현대로면 신수가 훤했다.정씨는 항상 아침 일찍 출근했고 저녁 늦게 들어왔다. 작업복 차림의 아저씨는 1톤 냉장 트럭을 몰고 다녔지만 빌라 주차장안으로는 트럭이 들어올 수 없었다. 공영 주차장에 차를 대어 두고 한참을 걸어 올라왔다. 흑석동 재개발 사업이 시작된 지 한참의 시간이 흘렀다. 벌써 동쪽 1차 구획은 정비가 완료되었고 고층 아파트가 거의 완성되어 갔다. 흑석동은 비만 오면 물이 고이는 동네에서 이제는 전직 대통령도 살고 유명 연예인도 사는 동네가 되었다. 토지 보상을 받은 사람들은 타지로 훌쩍 떠나거나 몇몇은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갔다가 새로운 아파트로 다시 입주 하고는 했다. 정씨의 직장인 정육점은 인터넷으로 ..

카테고리 없음 2024.12.19

6화_101호 경숙

경숙은 9급 공무원이다.철제 상가안의 작은 회사에 경리로 오랜 시간 근무했다. 소싯적 동호회에서 만난 친한 동생의 아버지가 운영하는 작은 공장이었다.염색 기계를 만들어 팔거나 스테인리스등을 취급했다.딸의 친한 지인을 직원으로 들인터이니 편의를 많이 봐주고 근무시간도 널널했다. 매일 아침 출근하시는 전무님 차를 타드리고 한 두시간 드라마를 보며 시간을 보냈다.점심 시간이 되면 알아서 인근식당 아주머니가 백반을 이고 오셨다.10년째 같은 식당 사장님이 하신 밥이었지만 조금도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고 먹고 살았다.전무님은 점심을 드시고 웹툰을 조금 챙겨 보시다가 3시쯤에는 일찌감치 퇴근하셨다.경숙은 알아서 물건 챙겨서 내보내고 전표 한두장 정리하면 끝인 일이었다.꽃 같은 20대를 공장에서 웹툰이나 소설등을 보며..

백조빌라_소설 2024.12.16

5화_302호 인지

302호는 빌라의 유일한 주차공간에 놓인 onata2의 주인이자 고양이집사 인지가 수납되어 있는 공간이다. 만화 지망생인 그녀는 자신이 호랑이이자 백조빌라의 수호신이라 믿는 고양이 한 마리와 살고 있었다. 인지는 그 고양이를 호랑이라 불렀다. 동그란 얼굴에 동그란 안경 모든 것이 동글동글 해보이는 그녀는 외모와 다르게 아주 네모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동화적 발상이었다. 인지는 자신의 마음을 ‘돌로 만든 옷장’이라고 불렀다.네모난 돌 서랍장은 이케아에서 흔하게 사고 조립할 수 있고 편하게 쓰다가 편하게 버리기 쉽게 생겼지만 조립이나 해체가 불가능해 보였다. 한 덩어리의 돌을 깍아내어 3단 서랍장을 만들어 두었다.3개의 칸으로 나누어져 있었고 제일 아래쪽에는 가족에 대한 이야기와 저주를 수납해두었..

백조빌라_소설 2024.12.15

4화_102호 홍할머니

102호에는 이 동네 터줏대감 홍 할머니가 계셨다. 주차 라인에 놓인 평상의 실질적 소유자이다.빌라를 깔끔하게 청소하고 힘들고 궂은일을 도맡아 하셨다.각 호에서 걷는 매월 15,000원의 관리비를 알뜰살뜰하게 쓰셨다.  건물을 보수하거나 하수구를 정비하거나 하는 일도 오랜 시간 동네에 계시며 쌓은 인맥으로 모든 일을 해결하셨다.백조빌라의 외부는 참 얼기설기 하수관들이 혈관처럼 지나가며 그 복잡한 속내를 대변하듯 지저분했다. 굵은 하수관이 세대마다 내려와 있고 타일도 떨어진 곳이 많았다. 오래된 건물에 살아본 사람들은 안다. 좁은 하수관으로 입주민들이 얼마나 큰 고통을 겪는지 말이다. 한 세대라도 잘못해서 하수관이 막히면 그 라인의 전 세대로 하수가 역류하곤 한다.집안의 모든 집기가 다 젖고 물을 빼낼 곳..

백조빌라_소설 2024.12.13

3화_202호 수미

올해로 서른인 수미는 평소에도 화가 많았다. 항상 뭔가 신경질적이고 진취적이었다. 학생운동에 심취해 여대에서 총 여학생회 회장을 지내며 동지들을 위해 부르짖던 날도 있었다.따르는 동생들도 많았고 나름 대학에서는 어깨 펴고 고개 좀 들고 다녔다.하지만 대학교에서 쓰던 감투가 인생에 크나큰 도움이 되지는 못했다. 오전 10시 믿기지 않겠지만 수미의 퇴근시간이다. 어김없이 검은색 오토바이 복장으로 완전 무장을 하고 오토바이를 끌고 밤늦게까지 배달 일을 하고 들어오곤 했다. 하루도 쉬는 날은 없었다. 녹초가 되어 들어와도 다음날 점심 피크타임 전에는 배달을 나가곤 했다.여대에서 졸업 후 대기업에 출근했지만 5개월 차에 때려치우고 나왔다.  나름 운동권 출신인 그녀를 노조에서는 내버려 두지 않았고 끊임없이 노조에..

백조빌라_소설 2024.12.12

2화_2층 1호 수현

계단을 세번 오른것 같은데 201호였다. 빌라가 다 그렇지 뭐...202호는 현관문 앞의 번호판이 없어져서 왼쪽의 201호만 유독 반짝거리는 듯 돋보였다.부동산 아줌마는 그 빌라는 너무 높기도 하고 관절이 안 좋아서 같이 올라갈 수 없으니 가보고 마음에 들면 짐을 풀고 안 그러면 열쇠를 가지고 내려오라고 했다.  “참 편하게도 일하는구만...” 만약 집이 마음에 들더라도 이 부동산 아줌마의 복비를 어떻게든 야무지게 깎으리라는 결심이 들었다. 작은 거실과 주방, 안방과 작은 화장실 그 옆에 또 작은방 나름 깨끗했다.도배도 이 정도면 나쁘지 않았고 장판은 완전하게 새것이었다.안도감이 몰려왔다. 다시 방을 안 구해도 된다는 안도감이었다.다시 캐리어를 끌고 그 긴 언덕을 거꾸로 내려갈 일이 없어서 다행이었다. ..

카테고리 없음 2024.12.11

1화_오르막길

은색 캐리어를 끌고 언덕을 오르는 자그마한 체구 덜컹 거리는 캐리어는 수현의 마음 만큼이나 피곤에 절어 있었다. 여러 가지 귀여운 모양의 스티커가 덕지덕지 붙어 있고 여행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훈장처럼 이곳저곳이 찌그러졌다.오랜 서울 생활에 수현의 마음도 이곳저곳 찌그러져 지쳐가는 중이었다.  뜨거운 날씨에 부동산을 여러 곳 전전할 시간도 체력도 없었다. 최소한 차가 들어오는 정도의 길이 가깝기라도 했으면 좋겠다는 게 수현의 바람이었다. 미로 속의 던전처럼 전기도 안 들어오는 곳을 방이라고 소개해주는 업자들의 마음도 모를 바는 아니지만 여자 혼자 산다는데도 끝끝내 그 따위 방을 추천하는 부동산 사장의 멱살이라도 잡고 싶었다.수현이 지낼 집은 사실 수현이 고르는 것이 아니라 수현이 끌어낼 수 있는 돈의 ..

백조빌라_소설 2024.12.11

프롤로그

재개발 현수막이 어지러이 걸려있는 흑석 시장의 모퉁이 후문 그 구석자리에 자리를 지키는 철물점이 있다.흔하게 볼 수 있지만 사람들의 관심사가 아닌 철물점, 오래되었다고만 알고 있지 그 역사에 대해서는 누구도 궁금해하지 않는 그런 곳이다. 다만 오래된 철물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공간말이다.  오래된 동네에는 반드시 있는 철물점은 잡화점 겸 만능 수리소 같은 곳이다. 노후한 집들이 많은 동네에는 이곳 저곳 수많은 고장 거리가 도처에 널려있기 마련이다.수도며 전기, 하수 등은 얼기설기 얽혀 우리네 사는 복잡한 사회처럼 하나의 거대한 군락을 이루고 있다. 번듯하게 지어진 새 아파트도 고장이 자주 나는 게 전기, 수도, 하수이다. 오래된 동네에 있는 오래된 철물점은 그 동네의 속사정을 누구보다 잘 안다. 누구..

백조빌라_소설 2024.1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