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색 캐리어를 끌고 언덕을 오르는 자그마한 체구 덜컹 거리는 캐리어는 수현의 마음 만큼이나 피곤에 절어 있었다. 여러 가지 귀여운 모양의 스티커가 덕지덕지 붙어 있고 여행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훈장처럼 이곳저곳이 찌그러졌다.오랜 서울 생활에 수현의 마음도 이곳저곳 찌그러져 지쳐가는 중이었다. 뜨거운 날씨에 부동산을 여러 곳 전전할 시간도 체력도 없었다. 최소한 차가 들어오는 정도의 길이 가깝기라도 했으면 좋겠다는 게 수현의 바람이었다. 미로 속의 던전처럼 전기도 안 들어오는 곳을 방이라고 소개해주는 업자들의 마음도 모를 바는 아니지만 여자 혼자 산다는데도 끝끝내 그 따위 방을 추천하는 부동산 사장의 멱살이라도 잡고 싶었다.수현이 지낼 집은 사실 수현이 고르는 것이 아니라 수현이 끌어낼 수 있는 돈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