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조빌라 4

6화_101호 경숙

경숙은 9급 공무원이다.철제 상가안의 작은 회사에 경리로 오랜 시간 근무했다. 소싯적 동호회에서 만난 친한 동생의 아버지가 운영하는 작은 공장이었다.염색 기계를 만들어 팔거나 스테인리스등을 취급했다.딸의 친한 지인을 직원으로 들인터이니 편의를 많이 봐주고 근무시간도 널널했다. 매일 아침 출근하시는 전무님 차를 타드리고 한 두시간 드라마를 보며 시간을 보냈다.점심 시간이 되면 알아서 인근식당 아주머니가 백반을 이고 오셨다.10년째 같은 식당 사장님이 하신 밥이었지만 조금도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고 먹고 살았다.전무님은 점심을 드시고 웹툰을 조금 챙겨 보시다가 3시쯤에는 일찌감치 퇴근하셨다.경숙은 알아서 물건 챙겨서 내보내고 전표 한두장 정리하면 끝인 일이었다.꽃 같은 20대를 공장에서 웹툰이나 소설등을 보며..

백조빌라_소설 2024.12.16

4화_102호 홍할머니

102호에는 이 동네 터줏대감 홍 할머니가 계셨다. 주차 라인에 놓인 평상의 실질적 소유자이다.빌라를 깔끔하게 청소하고 힘들고 궂은일을 도맡아 하셨다.각 호에서 걷는 매월 15,000원의 관리비를 알뜰살뜰하게 쓰셨다.  건물을 보수하거나 하수구를 정비하거나 하는 일도 오랜 시간 동네에 계시며 쌓은 인맥으로 모든 일을 해결하셨다.백조빌라의 외부는 참 얼기설기 하수관들이 혈관처럼 지나가며 그 복잡한 속내를 대변하듯 지저분했다. 굵은 하수관이 세대마다 내려와 있고 타일도 떨어진 곳이 많았다. 오래된 건물에 살아본 사람들은 안다. 좁은 하수관으로 입주민들이 얼마나 큰 고통을 겪는지 말이다. 한 세대라도 잘못해서 하수관이 막히면 그 라인의 전 세대로 하수가 역류하곤 한다.집안의 모든 집기가 다 젖고 물을 빼낼 곳..

백조빌라_소설 2024.12.13

1화_오르막길

은색 캐리어를 끌고 언덕을 오르는 자그마한 체구 덜컹 거리는 캐리어는 수현의 마음 만큼이나 피곤에 절어 있었다. 여러 가지 귀여운 모양의 스티커가 덕지덕지 붙어 있고 여행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훈장처럼 이곳저곳이 찌그러졌다.오랜 서울 생활에 수현의 마음도 이곳저곳 찌그러져 지쳐가는 중이었다.  뜨거운 날씨에 부동산을 여러 곳 전전할 시간도 체력도 없었다. 최소한 차가 들어오는 정도의 길이 가깝기라도 했으면 좋겠다는 게 수현의 바람이었다. 미로 속의 던전처럼 전기도 안 들어오는 곳을 방이라고 소개해주는 업자들의 마음도 모를 바는 아니지만 여자 혼자 산다는데도 끝끝내 그 따위 방을 추천하는 부동산 사장의 멱살이라도 잡고 싶었다.수현이 지낼 집은 사실 수현이 고르는 것이 아니라 수현이 끌어낼 수 있는 돈의 ..

백조빌라_소설 2024.12.11

프롤로그

재개발 현수막이 어지러이 걸려있는 흑석 시장의 모퉁이 후문 그 구석자리에 자리를 지키는 철물점이 있다.흔하게 볼 수 있지만 사람들의 관심사가 아닌 철물점, 오래되었다고만 알고 있지 그 역사에 대해서는 누구도 궁금해하지 않는 그런 곳이다. 다만 오래된 철물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공간말이다.  오래된 동네에는 반드시 있는 철물점은 잡화점 겸 만능 수리소 같은 곳이다. 노후한 집들이 많은 동네에는 이곳 저곳 수많은 고장 거리가 도처에 널려있기 마련이다.수도며 전기, 하수 등은 얼기설기 얽혀 우리네 사는 복잡한 사회처럼 하나의 거대한 군락을 이루고 있다. 번듯하게 지어진 새 아파트도 고장이 자주 나는 게 전기, 수도, 하수이다. 오래된 동네에 있는 오래된 철물점은 그 동네의 속사정을 누구보다 잘 안다. 누구..

백조빌라_소설 2024.1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