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조빌라_소설

5화_302호 인지

개복치 멘탈 클리닉 2024. 12. 15. 14:40

302호는 빌라의 유일한 주차공간에 놓인 onata2의 주인이자 고양이집사 인지가 수납되어 있는 공간이다. 

만화 지망생인 그녀는 자신이 호랑이이자 백조빌라의 수호신이라 믿는 고양이 한 마리와 살고 있었다. 

인지는 그 고양이를 호랑이라 불렀다.

 

동그란 얼굴에 동그란 안경 모든 것이 동글동글 해보이는 그녀는 외모와 다르게 아주 네모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동화적 발상이었다. 인지는 자신의 마음을 ‘돌로 만든 옷장’이라고 불렀다.

네모난 돌 서랍장은 이케아에서 흔하게 사고 조립할 수 있고 편하게 쓰다가 편하게 버리기 쉽게 생겼지만 조립이나 해체가 불가능해 보였다. 

한 덩어리의 돌을 깍아내어 3단 서랍장을 만들어 두었다.

3개의 칸으로 나누어져 있었고 제일 아래쪽에는 가족에 대한 이야기와 저주를 수납해두었고 가운데 칸에는 사람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와 희망을 수납해 두었다. 

제일 위 칸은 아직 넣을게 별로 없었는데 그 이유는 그곳에는 자신의 미래와 꿈에 대한 이야기를 넣을 수납칸이라고 정해 두었기 떄문이다.

 

3번째 칸의 공허함은 하루 하루 해가 뜨고 날씨와 기온의 바뀜과 비례하여 그 농도가 짙어져만 갔다. 

어느날부터 3번째 서랍의 깊숙한 안쪽에 고장난 괘종 시계가 걸렸다. 

20대 초반부터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처음에는 깊은 서랍이라 잘 안보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인지는 마음속 그 괘종시계가 얼마나 자신의 삶에 무가치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지를 알게 되었다. 

시계는 쓸모없이 그 자리를 덩그러니 차지 하고 있었다. 

하루에 두 번만 시간이 맞았고 하루 종일 시시각각 추가 흔들거렸다.

인지가 원하는 미래는 오지않았고 시간은 흐르지 않고 고정되어 경직되어 있었다. 

 

화방 선생님과 어시들이 모여서 밥을 먹는 자리에서 인지는 소릴 질렀다.

그깟 김치를 집다가 바닥에 흘렸다고 한 소리 들은게 그렇게 화를 낼 일은 아니었다. 

무슨 연유인지 그 시작이 어디부터인지 인지도 주변인 누구도 알 길이 없었다. 

얼굴이 벌개진 인지는 미리 생각해둔 불만과 대사를 앞뒤 없이 쏟아내었다. 

 

“매번 이런식이세요. 제가 실수를 했다고 해서 그 자리에서 바로 사람들 앞에서 정확히 딱 꼬집어야 속이 편하세요? 저는 김치를 집다가 하나 흘렸을 뿐인데 왜 이게 제가 작업하다가 실수한 부분과 연관되게 이야기 하세요? 이게 한 두번인가요? 씨발!! 이럴거면 때려치울게요.”

 

동해물과 1절부터 4절까지 급발진 하는 인지를 화방 선생님은 얼이 빠진 얼굴로 쳐다보고만 있었다. 

눈이 벌개진 인지는 고개를 쳐박고 밥을 끝까지 퍼먹었다.

대부분 이러면 숟가락을 탁 놓고 자릴 피하기 마련일 것이다.

눈물이 그렁그렁했지만 눈앞의 밥을 팽개치고 자릴 일어날 수 없었다.

엄마로부터 어릴때부터 부여된 습관이었다.

매를 맞고 밥상이 난장판이 되어도 밥상을 떠나는건 불허되었다. 

지독한 원리 주의자에게 양육되어진 인지는 남들이 보기에는 이중적인 소시오패스의 전형적인 외형을 보여주기 충분했다.

 

엄마는 말했었다.

 

“무슨일이 있어도 밥상머리 박차는거 아니다.”

“아파도 학교에서 아프고 죽어도 학교에서 죽어.”

“자식은 부모를 버려도 부모는 자식 안버린다.”

 

엄마는 요즘말로 명언제조기, 명언 매니아였다. 

자신이 뱉어낸 명언은 딸을 매우 아끼는 엄마를 그려내기 좋은 허울뿐인 말이었다.

그 이야기가 매일 반복되는건 문제가 있었다.

강박이었다. 

엄마의 명언들은 매주 조금씩 엄마에게 유리하게 변형되어 인지의 마음을 옥죄었고 자기 편한대로 신념의 소유자인 엄마는 누구도 대적이 불가능한 무적의 논리를 지닌 사람이었다. 

엄마는 자신만이 절대적인 선이자 진리라고 믿었다.

인지가 조금만 엇나간 행동하거나 대들기라도 하면 엄마는 자신의 엄마인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30분씩 인지를 세워두고 하소연을 하고는 했다. 

인지의 잘못을 극대화 해서 부풀리고 유년시절의 자잘한 실수와 과거의 실타래를 한참 풀어내었다. 

엄마의 위아래로 있는 다섯 형제들의 과오와 언행까지 한 번씩 다 빗대어 복기를 한 후에야 결론은 자신이 효녀라는 사실을 할머니에게 확인하며 통화를 마무리 하고는 했다. 

 

할머니는 수년 전에 간암이 생겼다.

암은 여러 내장으로 전이되어 내장의 절반이 없었다.

텅빈 껍질만 남았다는 볼멘 소리로 힘이 없는 할머니였지만 아주 먼곳의 교회를 버스를 두어번 나누어 타고 매주 다니시고 차가버섯 우린물과 유동식으로 버티셨다. 

인지가 보기에는 암의 이유도 엄마였고 그토록 버티고 계신 것도 엄마 때문이었다. 

 

그런 엄마는 성급한 마음에 인지를 하루빨리 학교에 보내고 하루빨리 성공적인 인생으로 만들어 주고자 했다.

무슨 수를 썻는지는 모르지만 편법으로 7살에 초등학교를 보냈다.

엄마의 이 결정은 인지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는 아주 어리석은 실수였다. 

작은 체구의 아이는 초등학교 6년 동안 줄곧 괴롭힘만 당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유치원부터 고락을 함께한 친구들로 이미 그들만의 세계가 공고해진 틈을 비집고 자신들보다 수준 낮고 한 살 어린 유치원 흰구름반 여자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으로 올라온 것이다. 

어느날 불쑥 자신들 틈에 낀 인지를 아이들은 두더지처럼 툭 튀어 나왔다고 해서 두더지라고 불렀다. 

오락실에 있는 두더지 인형의 머리를 때려 넣는 게임처럼 모든 아이들은 인지를 인형처럼 괴롭혔다.

누가 시작한 놀이인지는 몰라도 아이들은 그런 인지를 괴롭히는걸 하나의 오락이자 명예로 여겼다. 

포인트를 쌓아나가듯 작은 인지를 괴롭혔다.

 

미래의 꿈이 통계학인듯한 친구가 괴롭히는 아이들의 점수를 매겨서 순위를 정리해두었다.

매주 순위가 변동되었고 그 변동의 폭이 클수록 인지의 마음도 무너져갔다. 

4학년 2학기였다. 

여름방학을 앞둔 어느날 1등을 놓치지 않는 여자아이가 인지에게 또 다가왔다.

인지의 머리를 손바닥으로 땅땅 치며 점수를 올리고 자리로 돌아갔다.

“나 20점~ 야 임찬수 내 점수 올려.”

인지의 인내심은 한계에 다다랐다.

인지는 휴대용 연필깍이로 연필을 뽀족하게 깍았다. 

한 학기 동안 1등을 놓지지 않은 그 여자아이의 등을 연필로 푹! 내려찍었다.

엄마는 또 학교에 불려왔지만 이번에는 성격이 좀 달랐다.

인지만 전학을 가고 두더지 게임은 종료되었지만 다른 학교를 와서도 괴롭힘에는 종료가 없었다.

너무나도 당연한 이치였는데 엄마는 몰랐다. 

정확하게는 알고 싶어하지 않는 것 같았다.

아니면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았을 것이다. 

 

인지는 보호자를 잃어버렸다.

 

“다 너를 위한 일이야.”

“엄마말만 듣고 따라와. 나중에는 다 엄마한테 고마울 거야.”

"그런 것도 세상이야 이겨내야지."

"정 방법이 없으면 지혜롭게 이겨내야지 너 스스로 방법을 찾아봐."

 

얼핏 듣기에는 맞는 말 같지만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고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딸에게는 마땅치 않은 대사였다.

매일 매일 괴롭힘을 당해 너덜너덜 해진 몸과 마음을 이끌고 집으로 가도 항상 미용실일로 바쁜 엄마는 관심이 없었다.

엄마는 그런 인지에게 금전적으로는 분명한 헌신을 했다. 

전세를 벗어나지 못했어도 공부만큼은 혹독하게 시켰다. 

방과후에는 빈틈없이 학원을 끊임없이 보내곤 했다. 

학교를 다니는 평일 내내 개인 시간없이 뺑뺑이를 돌고 주말에는 밀린 과제와 숙제를 하며 시간을 보내야했다.

방과 후 집에서는 작은 시간도 나지 않으니 학교에서 그림을 그렸다. 

학업이 눈에 들어올리 없었고 교과서 모든 면에는 만화가 그려졌다.

만화를 제법 그리면 그릴수록 학교에서의 괴롭힘은 더 심해졌다. 

 

“오타쿠냐 윤인지?”

“히키코모리가 꿈이라며?”

 

따위의 모욕적인 대사들은 초등학생인 인지가 매일 매일을 버텨내기에는 너무나 가혹한 말들이었다.

여자아이들이 주로 괴롭혔는데 전학을 가고부터는 남자아이들의 괴롭힘까지 가세되었다.

인지 입장에서 이러한 저변의 확대는 전혀 반갑지 않은 일이었다. 

이런 인지의 괴로움을 엄마는 충분히 이해하고 해결해 주겠다고 했다. 

엄마가 학교를 2번 와서 항의를 했지만 효과는 없었다.

졸업을 하면 나아질 줄 알았다.

학교를 다니고 싶지 않았다.

홈스쿨링을 이야기 해 보았다.

하지만 엄마의 고집은 꺽을 수가 없었다.

 

“사람은 대학을 나와야 해.”

“언젠가는 다 추억으로 남아. 견디고 성장하는 사람이 강해지는거야.”

 

듣기 싫어 미칠 것 같은 이야기를 명언인양 말하는 엄마의 입을 틀어막고 싶었다.

근처의 여중으로 진학했다. 

그 결정은 엎친데 덮친격이었다.

여중으로의 진학은 엄마가 인지에게 내린 최악의 형벌이자 지옥이었다.

아이들끼리의 커넥션은 어른들의 세상보다 촘촘하고 그 악랄함의 정도가 더하면 더 했지 덜하지 않았다. 

중학교 1학년부터 3학년까지 친구들과 선배들도 일부 합세해서 인지를 괴롭혔다.

원정 출산은 들어봤어도 원정 왕따는 처음 들어보았다. 

초등학교에서 흩어진 일부 동창생들은 진학을 하고도 인지의 학교에 원정을 와서 괴롭히고 악질적인 소문을 흘렸다.

학교에서는 물리적으로 괴롭히고 그 외의 시간에는 핸드폰 문자와 메신저로 괴롭혔다.

자는 시간에도 SNS로 괴롭혔다. 

 

그저 괴롭혀지기 위해 태어난 인형처럼 인지의 몸과 마음은 너덜너덜해져갔다.

여자 아이들의 괴롭힘은 이 세상 어느 괴롭힘보다 악랄하고 정교하고 치밀하고 뻔뻔했다.

여중을 다니는 2년 동안 인지의 손목에는 수많은 자해의 흔적이 남았다.

인지의 꿈은 어서 빨리 용기가 생겨서 자신의 목에 밧줄을 거는 것이었다. 

엄마에게 그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자신의 방에 대롱 대롱 메달린 채 엄마에게 손을 흔들어 보이고 싶었다.

나약한 지금의 마음으로는 자살조차 실행할 용기가 없었다.

인지의 기억으로는 그렇다.

목을 매기 하루 전에야 퇴학을 할 수 있었다. 

엄마는 입버릇처럼 이야기하곤 했다. 

 

"아파도 학교에서 죽고 죽어도 학교에서 죽어."

 

인지는 그 말이 설마 진심인 줄은 몰랐다.

돌아가신 아빠는 대체 무었을 하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귀신이 되어 나타난다면 엄마부터 좀 잡아갔으면 좋을거라고 생각했다.

 

인지의 아빠에게는 이혼한 전처 사이에 오빠가 있었다.

그 오빠는 가끔 아빠를 보러 오곤 했지만 무슨 일인지 매번 싸우기만 했다.

그런 오빠와 인지는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유대감이 있었다.

학교를 다니지 않는 인지의 공부거리를 봐주거나 같이 pc방에서 게임을 하곤 했다.

 

“바다 보러갈까?”

 

그런 오빠와 가끔 바다를 보러 가는 게 유일한 낙이었다. 

오빠는 인지를 데리고 바다에 가서 맛있는 밥도 사주고 회도 사줬다. 

바다를 보고 맛있는 걸 먹는 그 시간이 참 좋았다. 

배다른 형제이지만 같은 집에서 산 기억이 없다.

사실 인지와 그 오빠 서로의 입장에서는 완전히 남이었다. 

바다를 보며 세상사는 힘든일들을 오빠에게 주저리 주저리 늘어놓았다.

백사장에 앉아 맥주도 한캔 두캔 마셨다.

그날밤 둘은 술에 취해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고야 말았다. 

 

"처음 아니니깐 걱정하지 마."

 

무뚝뚝하게 인지가 말했다. 쎈척이었다.

 

괴로울 것이 뻔했다. 암흑 같은 시간이 이어졌다. 

그렇게 둘은 당연하게도 연락을 주고 받을 수 없었다. 

그 일만 생각하면 두통이 오고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왜 그런 짓을 벌였을까 뭐가 잘못되었을까.

 

“실수다. 실수였다. 명백한 실수다."

 

밤낮을 고민하고 이불을 차며 울었다.

팔목에는 길죽한 커터칼 자국이 늘어났다.

지긋지긋한 엄마와 하루도 더 살 수 없었다.

작은 가방 하나를 챙겨서 훌쩍 떠났다. 

서울로 올라온 뒤 PC방과 찜질방을 전전하며 다들 그렇듯 주유소와 편의점을 위주로 일자리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고시생은 아니지만 어찌 어찌 노량진까지 흘러왔다.

룸 쉐어를 하며 지내는 언니들이 있는 곳에 들어왔다. 

접이식 메트리스를 하나 등에 앞에는 가방을 울러매고 알려준 주소로 갔다.

똑똑

부스스한 여자가 문을 열어주었다. 

 

“...”

“지내실 방은 이쪽이에요.”

 

좁은 방에는 아무것도 없이 얼룩진 메트리스만 두 개 놓여있었다.

 

“괜히 삿나..”

 

등에 짊어진 접이식 메트리스를 여기까지 업어온 자신에게 화가 났다.

짐을 풀고 메트리스에 누웠다.

룸메이트는 저녁 늦게나 들어온다고 했다. 

만화를 끄적거리다 이내 잠이 들었다.

우당탕탕 하는 소리에 퍼뜩 선잠에서 깨었다. 

족히 6시간은 잔듯하다. 

시계는 이미 12시를 넘어섯다. 

짙은 화장의 그녀가 가죽점퍼를 반쯤 걸친채 술에 취해 들어왔다. 

일부러 찢은듯한 망사스타킹과 퇴폐적인 붉은 립스틱은 

누가 봐도 클럽에서 진탕 마시고 늦게 들어온 정신 못차린 큰딸의 모습 그 자체였다. 

인지가 매번 그리던 그림과 비슷한 반항적이고 쎈 언니 

그 언니가 인지의 방문을 박차고 들어온 것이다. 

 

“응? 너구나 룸메”

“안년 난 재겨...   이라고 ... 해에에에에 ..”

 

메트리스에 다이빙 하듯 눕는데 짜리몽땅한 핸드백이 재경의 머리를 치며 물건들이 바닥에 우수수 흩어졌다. 

기절하는건지 잠든건지 미동이 없다. 

인지는 가방을 조심스레 들어 흩어진 물건들을 하나씩 챙겨 넣었다. 

인지는 서울에서 처음 만난 룸메이트 언니와 꽤나 괜찮은 사이를 유지했다. 

처음에는 멘토로 시간이 지나며 친구이자 연인으로 발전했다.

인지의 아픈 곳을 어루 만져주던 착한언니였다.

 

화방에 지망생으로 들어가거나 보조 작가로 들어가 어시던트 일을 했다.

웹툰 배경 밑 작업을 하거나 했다.

괴팍하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인지였다.

항상 불안했던 인지는 어느날 갑자기 잠수를 타곤 했다.

그림을 그리는 바닥은 아주 좁은 바닥이었다. 

평판이 깍일만한 소문은 금세 돌았고 이제는 어디에도 갈 곳이 없었다. 

편의점 같은 곳밖에는 할 일이 없었고 그마저도 일주일에 이틀 이상 일할 수가 없었다. 

무슨 임금제인가 주휴 뭐시긴가 그것 때문에 업주들은 알바들의 시간을 촘촘히 쪼개어 일을 시키곤 했다. 

최저 시급으로는 한 달치 방세와 관리비를 제하고 

쌀과 부식류 야옹이 밥과 패드 등을 사면 항상 월말에는 돈이 모자랐다. 

걸어서 하는 배달이라도 간간히 몇 건 뛰었다.

하지만 집에 홀로 있는 고양이 생각에 한두건 뛰면 잽싸게 집에 돌아와야 했다. 

홈캠이라도 달까 생각했지만 4만원여의 돈이 아까웠고 어딘가에서 해킹당할지도 모른다는 사실 때문에 두려웠다.

돌아가신 아빠가 물려준 유일한 재산 오나타 2가 있었지만 배터리가 나간 지 한참이었다.

굴러가지도 않고 세금만 나가는 자동차를 왜 가지고 있는지 아무도 모를 일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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