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조빌라_소설

프롤로그

개복치 멘탈 클리닉 2024. 12. 10. 15:54

재개발 현수막이 어지러이 걸려있는 흑석 시장의 모퉁이 후문 그 구석자리에 자리를 지키는 철물점이 있다.

흔하게 볼 수 있지만 사람들의 관심사가 아닌 철물점, 오래되었다고만 알고 있지 그 역사에 대해서는 누구도 궁금해하지 않는 그런 곳이다. 다만 오래된 철물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공간말이다. 

 

오래된 동네에는 반드시 있는 철물점은 잡화점 겸 만능 수리소 같은 곳이다. 

노후한 집들이 많은 동네에는 이곳 저곳 수많은 고장 거리가 도처에 널려있기 마련이다.

수도며 전기, 하수 등은 얼기설기 얽혀 우리네 사는 복잡한 사회처럼 하나의 거대한 군락을 이루고 있다. 

번듯하게 지어진 새 아파트도 고장이 자주 나는 게 전기, 수도, 하수이다. 

오래된 동네에 있는 오래된 철물점은 그 동네의 속사정을 누구보다 잘 안다. 

누구네 집이 주인이 누구이고 고장이 몇 층이 어디서 어떻게 나고 누구네가 하수도관을 작은걸 시공해서 매번 세입자들끼리 싸우고 하는 등의 일이었다. 

재개발로 동네의 반이 새 아파트로 바뀌면서 철물점도 매출이 반으로 줄어들었다. 

 

철물점 주인의 형은 몇 해 전 심근경색으로 저 세상으로 먼저 떠났다.

동생은 가게를 접어야 하나 하는 고민들로 섭섭한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가게 앞에 의자를 놓고 언덕으로 올라가는 길을 올라가는 사람들을 하염없이 구경하는 버릇이 생겼다. 

사람 구경만큼 재미난 것도 없었다. 

 

철물점에서 키우는 고양이는 아니었지만 누런 고양이 한 마리가 허름한 간판 왼쪽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팔다가 반품이 들어온 플라스틱 개집을 그 위에 올려두었다. 

철물점 사장이 길 건너 사람들을 구경하는 동안 그 누런 고양이도 함께 사람들을 구경했다.

고양이는 오랜 시간을 고민했다. 새로운 만남이 필요했다. 

언제까지 시장에서 음식물을 뒤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제대로 된 집사를 찾아서 이제는 사료를 먹고살고 싶어졌다.

요즘 이 동네 사람들이 그러하듯 자신도 새집에 입주하고 싶어졌다.

 

생각이 많아졌다. 

헌신이란 건 어려운 거다.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받기만 하거나 주기만 하면 언젠가는 영혼에 구멍이 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고양이는 태어난 게 아닌 어딘가에서 발생하면서부터 이 사실을 알고 있다. 

사랑을 나눔에 있어 절대적인 반반은 없다. 어느 쪽이든 서로를 위해 희생하는 부분을 기꺼이 감내하고 내색하지 않아야 오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다. 

 

고양이의 정신세계에는 태초에 인내심이라는게 1g도 없다.

하지만 따스한 햇볕은 고양이에게 참고 기다리는 마음이 마치 있기라도 한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켜 주곤 했다.

고양이는 간판 위 자신의 공간에서 인내심을 가지고 오랜 시간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은 딱 봐도 피곤하게 생긴 여자가 언덕을 오르고 있었다. 

 

'백조빌라 행이구만'

고양이는 그 빌라로 오르는 여자들의 공통점을 알고 있다는 양 으스대었다.

까무잡잡한 피부의 여자, 몸매가 빵빵한 검은 옷을 좋아하는 여자, 동그란 얼굴을 한 그 심성이 네모네 보이는 여자아이도 전부 캐리어를 끌고 올라갔다.

언덕이 시작되기 전 한 번씩 허리를 펴 먼 곳을 보고는 한결같이 같은 표정으로 언덕을 오르곤 했다. 

 

그 미묘하고 복잡한 표정을 고양이는 내내 곱씹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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